문화 및 역사

고토야키 가마터

사와야마 산기슭, 오미 철도 본선이 달리는 터널을 지나 히코네 방면으로 나오면 서쪽 일대에 고토야키 가마터가 남아 있습니다.
고토야키는 에도 시대 후기, 분세이 12년(1829년), 히코네의 상인 기누야 한베가 당시 첨단 기술의 꽃이었던 도자기의 굽는 기술 도입을 고려하여 이마리 장인을 초청, 처음에는 세리카와 강 남쪽의 사라시야마 산에 가마를 지었지만, 문제가 있어 장소를 사와야마 산기슭의 모치키타니로 옮겨 가마를 지은 뒤, 이를 성공시키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주소
(우) 522-0007 시가현 히코네시 후루사와초
  • 고토야키의 확립
    국산 장려는 여러 번들의 풍조였으며, 특히 히코네번은 적극적인 지원으로 10년 만에 히코네야키, 고토야키라는 이름을 확립하고 덴보 13년(1842년), 이이 나오아키 시대에 몰수하여 번 직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번 가마는 제12대 나오아키 시대 8년, 제13대 나오스케 시대10년이 성수기, 제14대 나오노리 시대 2년은 종말기로 통산 2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 불과했지만, 자기를 굽는 기술은 징더전과 이마리 못지않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에쓰케(도자기에 그림·무늬를 그려 다시 굽는 작업)가 치밀하고 호화로우며 고상한 고토야키 특유의 멋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명품을 지향하며 하얗게 굽는 단단한 도자기를 중심으로 긴란데, 아카에킨사이, 이로에, 소메쓰케, 청자 등 섬세하고 아름다운 명품들을 다수 제조했습니다.

    도자기의 원료석은 아마쿠사산이었으며, 소량의 히코네 무시야마 성의 돌을 섞어 군청색 잿물로 염색한 도자기는 전부 번의 야마자완 가마에서 구웠고, 아카에킨란데 종류는 그대로 번의 가마에서 모두 구운 뒤, 번의 에쓰케 가마에서 에쓰케(도자기에 무늬를 그려 다시 굽는 일) 작업을 거쳤습니다. 또한, 조카마치와 근교 민가에 설치된 긴가마라고 하는 작은 에쓰케 가마에서 구운 것은 민가아카에 고토야키라고 부릅니다.
  • 고토야키의 쇠퇴
    이처럼 고토야키가 대대적으로 이 지방의 특색 산업으로 정착했을 무렵, 사쿠라다 문 밖의 변이 일어나 정세가 불안해졌고, 100명에 가까웠던 야마자완 도기 장인들은 겁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남아 있는 히코네 출신 4명만으로는 창업이 어려워졌고, 번 가마는 폐지됐습니다. 그 후, 가마터의 설비와 재료를 모두 인수받은 야마구치 기헤이 등에 의해 민간 가마가 되었으며, 1895년까지 존속했지만 과거 고토야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번 가마 시대는 약 20년, 전후로 민간 가마 시대를 포함해도 약 60년에 불과해 '짧았던 환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 히코네시에서는 새롭게 고토야키를 재건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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